2008. 10. 3. 19:27

검은 태양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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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교수님을 편애하고 존경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오랜만에 출시된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뜨거웠던 "장미의 이름"이나 "바우돌리노" 의 깊이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에코교수님의 번역된 "로아나"를 갈구해왔던것도 사실입니다.

 역시 대형 출판사의 힘인지, 에코교수님의 힘인진 몰라도 많은 매체에서 "로아나"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만큼 소설에 대한 제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주문한 "로아나"를 받아볼 수 있었고 저는 그자리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읽어내려간 "로아나"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에코교수님의 그 무언가, 중요한 그 한가지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에서 얌보의 마지막 한마디 - "왜 태양이 검게 변하고 있지? - 읽고 책을 덥는 순간 제 머리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중세 수도원 어딘가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을것 같은 아드소라던가, 역사이 일부분이 된 바우돌리노, 세상앞에 무력한 까소봉, 상상속의 이상을 위해 바다로 몸을 날린 로베르토....
하지만 이 얌보라는 꿈꾸는 노인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건지 도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네, 제가 이상한게 아니라면 이 소설은 아무것도 아닌 소설임이 분명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에코교수님의 소설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카드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이라면 소설의  흐름의 정점에 있는 웃음에 대한 해석, "바우돌리노" 에서의 역사와 환상의 절묘한 조화, "푸코의 진자"에서의 텍스트 속에 감춰진 커다란 음모 등, "아! 에코"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최고의 소설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로아나"의 경우는 어떤 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고서적을 운영하는 한 노인이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고 요양하던 도중 꿈을 꾸다 끝나는 그냥, 한줄로 요약되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이야기 입니다.

 여러 언론매체나 광고등을 보면 주로 이 소설의 특징을 "백과사전식 전개"로 꼽습니다. 하지만 이런 백과사전식 전개는 에코의 모든 소설에 기본 바탕으로 깔려있는 기본적인 특징이었습니다. 딱히 이 소설만의 특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역으로 이야기 한다면 에코교수님은 이제까지의 실험적인 소설틀 통해 인기를 구얻었고 이번 "로아나"를 통해 이제까지 각종 매체들이 찬사를 하던 백과사전식 전개를 주요 포인트로 잡고 "작정하고" 쓰신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만의 생각이지만 너무 "총체적인 지식"에 집중한 나머지 소설의 진짜 포인트인 이야기의 재미는 놓치신게 아닌가합니다.
에코 교수님의 소설이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다름번 소설에서는 정말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0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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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4. 00:16

두가지 길 (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얌보가 다락에서 어렸을 때의 삶의 괘적을 찾는 동안 당시의 전란 속에서 라디오가 들려주는 상반된

두 세계의 경계를 마주한다. 에코는 얌보의 파시즘교육에 물든 어린 시절이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감성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는가에 대한 여러 배경 중 하나로 이 라디오를 사용한 듯 하다.


아래는 책에 인용한 상반된 두 세계를 대변하는 노래다.

 

잠수병 해병의 노래

짙은 어둠 속에서

검은 물결을 해치며 나아간다.

사령탑에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잠수함들이 나아간다.

용기와 병기로 무장하고 광대한 공간을 누비며 공격에 나선다!

 

가자!

넓디 넓은 바다로

죽음과 운명을 마주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쳐부수고

침몰시키자

가는 길에 만나는

모든 적을 깡그리!

해병은 이렇게 산다.

소리가 잘 울리는

바다 속 깊은 곳에서!

해병은 적을 무찌르고

역경을 이겨낸다

누가 승리할지

아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냐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냐

내 사랑은 바람결에 장미 꽃잎들처럼

흩어져 버릴 리가 없어

내 사랑은 아주 강해서

굴복하거나 시들해지지 않아.

난 내 사랑을 보살피고,

잘 지켜낼 거야.

내 가여운 사랑에게서

심장을 앗아 가려는

독을 품은 온갖 유혹에 맞설 거야.

 

이런 시대적 이중성에 대해 에코는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다른 노래들을 들어 봐도 삶이 서로 다른 두 길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쪽에는 전황보고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우리 악단들이 흐드러지게 쏟아 내는 낙관주의와 명랑성 교훈이 있었다.

 

위의 글이 단지 라디오 방송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표현이라면, 몇장 뒤 여러 장에 걸친 라디오에 대

한 이야기를 얌보와 연결시키기 위해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그러면 나는 어떠했을까?

나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당시의 이탈리아를 어떻게 경험했을까?

 

마치 저 한 문장을 위해 여러 장에 걸쳐 라디오 속 노래에 대해 이야기 한 듯 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 시대의 이탈리아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 같다면 지금의 내 상황과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야 할 길은 하나인데 나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길에서 상처를 받고,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길에서도

방황한다. 지금에 난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린 그 시대의 이탈리아와 같다.

 

복잡한 내 두가지 길에 언젠가 삶의 지표가 되어 줄 표지판이 생기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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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pientis 2008.07.28 18:07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지신데요...저도 에코를 즐겨하려 노력 중입니다. 가꿈 찾아 뵐께요...

2008. 7. 8. 17:41

가장 잔인한 달 – (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중세와 근현대를 오가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란 이름들 달고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 현대, 그것도 아주 깊숙한 기억의 안개속으로 말이다.


로아나에서는 안개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아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이는 장미의 이름이나

바우돌리노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4부 내고향 알레산드리아-안개를 이해하기, p399)’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에코는 자신의 고향의 진면목을 안개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안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 놓았다. 아래는 그 내용중 일부이다.

 

[… 때로는 안개 속에서 유령이 홀연 나타났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증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허깨비 같은 실루엣이 코앞에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우리를 피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

 

마치 병원에서 눈을 뜬 얌보의 기억을 대변하는듯한 문장이다. 에코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신을 기억하기 위한 얌보의 노력을 안개에 접목시키며, 보일듯 말듯한 현실과 안개의 기억속에서

백과사전식 에코의 지식들로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러는 사이 얌보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시작인 이름을 알게된다.

 

가장 잔인한 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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